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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잊지 말아야" 일본 탐방 나선 독립유공자 후손들

롯데장학재단ㆍ광복회,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생 해외역사탐방' 성료

43명 후손 장학생과 3박4일간 일본 도쿄ㆍ가나자와ㆍ교토ㆍ오사카 방문

장혜선, "한국과 일본 잘 어우러져 좋은 결과 나오길 바라는 마음"

장학생들, "조상들의 희생정신 되새기고 한일 관계 다시 생각한 계기"

 


 

 

"한국과 일본이 민감한 부분도 있지만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져서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장혜선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지난 9일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도쿄를 시작으로 3박4일간 가나자와, 교토, 오사카를 거쳐 19일 인천으로 귀국하는 숨가쁜 일정이었다. 이번 출장은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생 43명이 함께했다.

 

롯데장학재단은 2020년부터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왔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4명 많은 54명의 장학생을 선발했고, 광복회와 함께 처음으로 해외 역사 탐방을 기획했다. 첫 해외 역사 탐방지로 일본을 택한 이유를 묻자 장 이사장은 "저희 할아버지(故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가 일본에서 성공하지 않았냐"며 "한국과 일본이 민감한 부분도 있지만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져서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녀의 뜻이 통했을까? 일본 역사 탐방을 함께한 학생들은 "일본에서 우리 조상들의 희생정신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기회가 됐다"면서 "역사 보존을 위해 힘쓰는 일본인들이 있다는 점도 놀라웠고, 무엇보다 우리가 기억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 첫 방문지는 '2ㆍ8 독립만세운동' 현장…'3ㆍ1운동'의 도화선

 

이번 탐방은 일본 도쿄에 위치한 히비야 공원에서 시작됐다. 넓직한 잔디광장과 분수대가 맞이하는 공원은 평화로운 분위기였으나, 1919년 2월8일 이 곳에서는 한국인들의 독립만세운동이 펼쳐졌다. 당시 공원 내 공화당이 있었기에 이 곳에서 만세운동이 펼쳐졌는데, 이는 같은 해 서울에서 진행된 3ㆍ1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쿄 한국 YMCA에 가면 2ㆍ8 독립선언 기념비를 볼 수 있다. 도쿄 유학생 600여명이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일으킨 2ㆍ8 독립선언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다.

 

주재형 재일본한국 YMCA 총는 2ㆍ8 독립선언에 대해 설명하며 일본 변호인 후세 다쓰지를 중요 인물로 소개했다. 그는 "2ㆍ8 독립선언 주도자들이 체포됐을 때 변호를 맡았던 일본인 후세 다쓰지를 기억해야 한다"며 "후세 다쓰지는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변호사 자격정지에 두 번의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일관계가 경색된 부분도 있지만 인도주의적인 측면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봉창 의사 순국지에 세워진 '형사자위령탑'

 

◆일본인들이 기리는 슬픈 역사…형사자위령탑ㆍ관동대지진 추모비 세워

 

탐방 이틀차에는 일본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투척했던 이봉창 의사 순국지를 찾았다. 학생들의 발길이 멈춘 곳은 과거 형무소 사형터라고 상상하기 힘든 작은 놀이터였다. 과거 이봉창 의사를 비롯해 김지섭, 박열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됐던 이치가야 형무소는 현재 주택단지로 변했다. 놀이터 한 쪽 구석에는 '형사자위령탑'이 쓸쓸히 세워져 있었다. 위령탑은 1964년 일본 변호사협회사협회가 세웠다.

 

허동현 경상대 화학과 학생(신송식 독립유공자 후손)은 "우리 독립유공자들의 흔적이 지금은 너무 허름하게 남았다는 것이 속상하다"면서 "이 조그만한 비석이나 터 마저도 사라질 수 있겠다 싶어 이를 보존하고 영웅들에 대한 예를 갖춰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봉창 의사 순국지에 이어 찾은 관동 마을에서도 학생들은 비슷한 생각에 잠겼다. 일본 관동지방은 1923년 9월 1일 히로시마 원폭의 1만배에 달하는 강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극심한 혼란으로 민심이 나빠지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뿌렸다"는 유언비어가 펴졌고, 일본군과 경찰, 자경단은 관동 일대에서 6000여명 이상의 한국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관동대지진 조선인 순직자 추모비'가 마을 한켠에 세워졌는데, 이는 놀랍게도 일본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사유지를 매입해 마련한 것이다.

 

 

 

현재 관동대지진 추모비를 관리하는 일본 시민단체 '호센카(봉선화)'의 니시자키 마사오 이사는 "일어나버린 일을 다시 되돌릴 수 없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역사를 잊지 않는 일"이라며 "비참한 일일지라도 정면으로 부딪혀 잊지 않고 죄를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라며 한국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니시자키 마사오 이사가 한국인 학살 당시 끔찍했던 상황을 설명할 때 학생들 사이에서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다만 한국 희생자들을 기리고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일본인의 모습에 가슴 뭉클한 감동도 함께 밀려왔다.

 

김소연 서울대학교 소비자아동학부 학생(임태일 독립유공자 후손)은 "일본에서 활약한 우리 독립 투사분들 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 우리조상들을 위해 활동해 주시고 또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추모 활동을 해주시는 분들을 보며 한일관계가 무조건적인 비판이나 적개심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서로 협조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게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회를 전했다.

 

 

◆쓰레기 더미 밑에 방치됐던 윤봉길 의사 유해…"역사 기억하고 멋진 미래 열길"

 

탐방 사흘째 학생들이 도착한 곳은 가나자와시에 위치한 윤봉길 의사의 암장 장소였다. 윤봉길 의사의 암장지는 산 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가는 길부터 험난했다. 산 속 좁은 골목길 사이에 마련된 윤봉길 의사의 암장지적비. 처연함이 느껴지는 이 곳은 과거 쓰레기 소각장이었다.

 

윤 의사는 중국 상해에서 의거했으나 일본으로 끌려와 수감 생활을 하다 1932년 가나자와에서 총살형을 당했다. 당시 일본군은 윤 의사 시신을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아무런 표식도 없이 매장했다. 일본 시민들은 그 사실을 모른채 윤 의사 시신 위를 밟고 지나가거나 쓰레기를 쌓아뒀다. 1945년 해방 후 유해 발굴이 시작됐고, 이듬해 윤 의사 시신이 매장된 지 14년 만에 유해 발굴에 성공했다.

 

박현택 윤봉길 의사 암장지 보존회 회장은 "해방 후 윤봉길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이 시작됐는데 우리 교포 50여명이 3일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라 붙었다"며 "인근 육군 묘지를 관리하던 승려를 통해 매장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표식도 없이 쓰레기 더미가 나뒹굴고 있는 곳에서 14년간 윤 의사가 묻혀있었다는 사실이 처참하기 그지없었다"고 말하며 흐느꼈다.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생들이 윤봉길 의사 순국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롯데장학재단 제공

 

한국으로 돌아하는 마지막 날까지 역사 탐방은 계속됐다. 장학생들은 마지막 날 교토에 위치한 도시샤 대학교를 찾아 윤동주 시비를 본 후 오사카로 이동, 윤봉길 의사가 구금됐던 오사카성 형무소 터를 돌아봤다.

 

탐방에 함께한 윤주경 전 국회의원(윤봉길 의사 손녀)는 "윤봉길 의사는 우리의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멀고도 험한 독립운동의 길을 가신 분"이라며 "후손 학생들도 지금 어려운 시국이지만 희망과 용기를 갖고 대한민국의 멋진 미래를 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탐방을 마친 장혜선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일본 곳곳에 퍼져 있는 독립유공자분들의 역사적 발자취를 현장을 통해 직접보고, 이를 통해 후손 장학생들이 선조에 대한 자부심과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더해진 것 같아 기대 이상이었다"고 평했다.

 

한편 롯데장학재단은 독립유공자들의 숭고한 혼과 얼을 계승하고 후손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2020년 독립 유공자 후손 장학금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 3억원을 포함해 지금까지 누적 17억원을 총 243명의 장학생에게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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